시오타 치하루 개인전 《Return to Earth》
가나아트센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30길 28)
2025. 7. 25 (금) – 2025. 9. 7. (일) (총 44일간)
가나아트는 2022년 《In Memory》 이후 3년 만에 시오타 치하루(Shiota Chiharu, b.1972)의 근작을 선보이는 개인전 《Return to Earth》를 개최한다. 작가는 교토 세이카 대학(Kyoto Seika University)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독일로 유학을 떠나 함부르크 조형대학(University of Fine Arts Hamburg), 브라운 슈바이크 예술대학(Braunschweig University of Art), 베를린 예술대학(Berlin University of the Arts)에서 수학했다. 현재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그는 프랑스 그랑 팔레 (2024), 일본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 (2024), 미국 ICA 워터셰드 (2025)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소개한 주요 작품들을 한국에서 처음 공개하는 자리로,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삶과 죽음, 실존과 정체성에 대한 사유를 담은 작품을 집약하여 선보인다.

Return to Earth, 2025, Installation: Rope, earth ⓒ Shiota Chiharu, Gana Art Center
시오타는 타인의 죽음을 마주하고 느낀 두려움을 시작으로, 두 번의 암 투병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직접 경험했다. 이러한 개인적인 체험은 그의 작품 세계에 실존적 질문과 고뇌로 깊이 새겨졌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유한한 삶을 소멸로 보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차원으로의 전이로 인식하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로써 그의 작업은 점차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었고 이는 인간 사이의 관계성, 나아가 정체성과 기억, 사회가 만들어낸 이분법적 경계 속 개인의 위치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 복합적인 사유를 시각화하기 위한 재료로 ‘실’을 선택하였는데, 그에게 실은 감정과 기억, 관계의 흐름이 물질화된 형태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구조를 외부로 끌어내는 매개이다. 단일한 선이자 동시에 무수한 교차점을 형성하는 실은 개인과 세계, 자아와 타자, 삶과 죽음을 연결하며, 얽히고 흐트러진 형태 속에 인간 존재의 복합성을 담아낸다.

Cell, 2024-2025, Glass, metal wire, thread, Dimension variable ⓒ Shiota Chiharu, Gana Art Center
본 전시는 시오타가 오랜 시간 천착해온 주제를 한층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전 가나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설치작 <Between Us>(2020)에서는 오래된 의자와 붉은 실을 엮어 개인의 존재와 관계를, <In Memory>(2022)에서는 흰 실과 배, 드레스와 같은 사물들을 통해 기억이라는 주제를 다뤘었다. 과거의 작업들이 작가 자신을 실존하게 하는 관계와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자연과 인간, 존재와 비존재를 연결하는 보다 확장된 '순환의 구조'를 드러내고자 한다. 시오타는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자연의 순환 안에 포함된 일련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작가는 육체는 소멸하더라도 영혼과 기억은 남는다는 믿음 아래, 죽음을 단절이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사유해왔다. 이는 죽음을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삶과 맞닿아 있는 불가분의 요소로 인지한 결과이며,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상실과 고통을 수용하고 치유하여 삶의 형태로 전환하려는 태도를 반영한다.

Second Skin, 2023, Wire, 35 x 45 x 50(h) cm ⓒ Shiota Chiharu, Gana Art Center
더불어 작가가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미리 선보인 연작 <The Self in Others>(2024)는 한 인간을 이루는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시오타는 병원이나 해부학 책에 나오는 인체 모양이 분명 나의 신체와 같은 구조임에도 이질적이라 느꼈고, 이러한 감각이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특히 그는 일본을 떠나 낯선 땅에서 활동하면서 ‘나’라는 존재가 이방인처럼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에, 자신이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간다는 감각을 느꼈다고 한다. 작가는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분리된 신체의 파편을 담은 조각들을 한 벽면에 설치하였는데, 이는 육체의 단절 속에서도 나를 구성하는 기억이 이어져 있음을 상징한다. 개인은 관계 속에서 매 순간 변화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이 연작은 한편으로는 시간과 경험을 넘어 유지되는 자아의 본질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아가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끊임없이 재형성된다는 점을 담아낸다.

Nokon kjem til å komme, 2024, Water-soluble wax pastel, ink and thread onpaper, 30 x 40 cm ⓒ Shiota Chiharu, Gana Art Center
특히 3전시장에서 선보이는 <Return to Earth>(2025)는 이러한 시오타의 철학이 응축된 설치 작품이다. 작가는 전시장의 천장에서 바닥까지 서로 얽혀 내려오는 검은 실을 통해 자아와 타자, 현실과 비가시적 세계 사이를 교차하는 구조를 가시화한다. 마치 혈관과 신경세포, 혹은 나무의 가지를 연상시키는 검은 실들은 인간의 신체 구조와 자연의 유기적 연결고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우리가 거리를 둔 채 세계를 관망하는 존재이기보다는 그로부터 비롯된 존재임을 자각하게 한다. 검은 실이 전시장 바닥의 흙더미에 닿는 설치 방식은 죽음을 암시하는 데에서 나아가, 인간 존재가 자연으로부터 태어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근원적인 순환의 사고가 전시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설치 작품을 통해 인간의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고, 숨결은 공기가 되며, 정체성과 영혼은 또 다른 자연의 일부로 흩어진다는 믿음을 시각화한 것이다.

Connected to the Universe, 2024, Thread and ink on canvas, 33 x 33 cm ⓒ Shiota Chiharu, Gana Art Center
《Return to Earth》라는 전시 제목은 단순한 육체의 소멸을 넘어, 삶과 존재에 대한 시오타의 오랜 사유를 함축하고 있다. 본 전시는 2000년 그의 첫 개인전 《Breathing from Earth》에서부터 제기된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25년에 걸친 예술적 여정을 통해 집약된 결과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여정의 단면이기도 하다. 작가는 개인의 내밀한 경험과 감정을 형상화하는 동시에, 그것을 생명과 존재라는 보편적 차원으로 확장시켜왔다. 이러한 작업은 개인적 서사의 발화를 넘어 상실과 그로 인한 고통을 예술을 통해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다시 사유해야 할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을 환기시킨다. 이처럼 시오타의 작품은 가시적인 세계와 보이지 않는 내면 사이를 넘나들며 인간 존재의 근원에 다가가는 방식을 보여주는데, 이는 예술이 여전히 세계를 인식하고 인간을 성찰하게 하는 주요한 사유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The Self in Others, 2024, Mixed media, Dimension variable ⓒ Shiota Chiharu, Gana Art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