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 남겨진 것, 너머 Left, over
2025년 7월 3일 ~ 2025년 8월 28일
26SQM 박서보재단 |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24길 9-2
"스스로조차 기억할 수 없는 시간들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나"1)

김진희, A Cup of Water 2, 2024, Acrylic on canvas, 30x4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가만히 한참을 누워있다가 물을 따랐을 테다. 테이블로 물컵과 몸을 옮겨두고도 한참을 가만히 앉아서, 어찌할 도리 없이 가라앉는 시간과 감정에 따라 고개도 함께 떨구었을 거다. 하루의 끝 무렵 아페롤 스프리츠를 주문하고, 바에 앉아서는 누군가와 함께여도 그 안에 ‘함께’는 없는 시간을 보냈을 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연한 허기에 편의점에서 무엇이든 집어 들어야 했었을 거다.

김진희, Aperol Spritz Time, 2024, Acrylic on canvas, 50x4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김진희, At the Späti (Late Night Shop), 2024, Acrylic on canvas, 60x5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전시장에 걸린 작품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스스로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그런 하루를 보낸 적 있는 것 같다. 흐릿해진 어떤 감정의 파편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쳐 지나간 듯 보이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계속 침전되고, 그 감정의 무게를 따라 고개가 떨구어지는 그런 하루. 김진희의 작품은 바로 그런 감각을 되살린다. 지나간 줄 알았던 감정이 어떤 형상을 띄고 다시 다가올 때, 우리는 그 잔재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의 경계를 다시 돌아본다.

김진희, Leftover, 2024, Acrylic on canvas, 180x16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Leftover (2024)에서 그려진 식사 후 남은 음식처럼 테이블 위에 내려앉은 얼굴은 어떤 것이 매듭지어지고 나서도 남겨진 찌꺼기 같은 그 무언가가 된다. 제목은 영어로 ‘남은 것(Leftover)’을 일컫는 단어이지만, 작품 속 허공을 바라보는 두 눈은 이내 남겨진 것의 ‘너머(over)’를 상상하게 한다. 그 시선은 과거에 속한 지나가 버린 것과 현재 남은 것 사이에서 현존의 증거처럼 쌓인 감정의 층을 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진희의 작업은 어떤 특별한 서사나 극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무심하게 지나가는 하루의 틈에 집중한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일상적인 순간에서 “불현듯 타자와 분리된 나를 마주하는 경험”, 그래서 “어딘가 생경하면서 한편으론 익숙한”2) 그 순간을 김진희는 조명한다. 그의 작품은 내밀히 묻어두어 이제는 기억 속에 흐려진 듯한 감정의 흐름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게 한다. 작가는 그 잔재를 통해 ‘지금-여기’의 감각을 다시금 일깨운다.

김진희, Lay down on the Stairs, 2024, Acrylic on canvas, 80x12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전시 《남겨진 것, 너머》는 삶의 어떤 순간이, 어떠한 형태로 남아 있는지를 묻는다. 덧없이 사라진 순간의 잔상인 양 남겨져 있던 것이 사실은 얼마나 구체적인지, 그리고 그 너머에는 무엇이 존재하는지를 그려보게 한다. 김진희는 낯설게 보는 감각을 통해 우리를 먼 곳으로 데려가는 대신,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는 찌꺼기 같은 것들과 조용히 마주하게 한다. 그것은 휘발되지 않는 감정의 형식이며, 동시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성해 온 방식이기도 하다.
1) 김진희, 작가노트 ;
이보배 「부재의 순간을 부여잡기」 (2025)에서 재인용, 디스위켄드룸 제공.
26SQM의 전시는 예약 없이 자유롭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월요일~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